객석에서 잠시 꼬고 앉았던 다리를 나도 모르게 풀고서 등을 곧추세운다. 모두들 계엄군이 도청을 떠나는 것으로 알았던 시각. “잘 있어요. 잘 있어요. 그 한마디였었네. 잘 가세요. 잘 가세요. 인사말 했었네.” 도청 앞에 모여든 시민들이 이현의 70년대 히트곡 ‘잘 있어요’를 승리의 송가처럼 흥겹고 떠들썩하게 부른다.
이윽고 애국가가 흐르자 노래를 멈추고 자동적으로 부동자세를 취하는 시민들. ‘화려한 휴가’를 나온 대한민국의 군인들이 애국가를 ‘배경음악’으로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총을 난사하기 시작한다. 삽시간에 지옥으로 변한 금남로. 총에 맞아 죽은 아버지 옆에서 어린 아이가 슬피 운다. 사격을 피해 달아나던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의 아이를 덥석 안고 달린다. 세월을 뛰어넘어 스크린에 재현된 비극을 바라보는 또 다른 누군가의 눈에서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른다.
김지훈 감독의 ‘화려한 휴가’(7월26일 개봉)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영화일 것이다. 광주에투입된 공수부대원들이 곤봉으로 마구 내려칠 때, 무고하게 살해된 시신 2구가 손수레에 실려 나타날 때, 계엄군의 최후 진입 전 여주인공이 밤거리를 돌며 “시민 여러분, 우리를 잊지 말아주세요”라고 애절하게 가두방송을 할 때,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끝내 도청에 남아 최후 항전을 하던 시민군들이
하나씩 총탄에 쓰러질 때, 사진과 자료 화면 혹은 역사의 기록으로 남아 있던 5.18의 상흔이 스크린 속에서 생생히 재현되면서 관객을 옴쭉달싹 못하게 만든다. ‘화려한 휴가’는 그런 영화였다.
성적이 탁월한 고교생 동생 진우(이준기)와 함께 살아가는 택시 기사 민우(김상경)는 짝사랑하는 간호사 신애(이요원)만 보면 가슴이 떨린다. 전직 대령 출신의 택시 회사 사장 흥수(안성기)가 신애의 아버지인 줄 미처 모르는 민우에게 택시 기사 선배 인봉(박철민)이 연애 방법을 일일이 가르쳐준다. 하지만 때는 1980년 5월, 그리고 광주. 순박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곧 ‘5.18’이라는 참극이 밀어 닥친다.
그런데 어쩐 일일까. 이 영화는 시청각적으로 리얼한 재현 방식에도 불구하고, 정작 5.18의 의미에 대해서는 의아스러울 정도로 발언을 삼간 채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와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는 말만 동어반복한다.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메시지는 결국 하나마나 한 말이 된다. 그리고 정치적인 소재를 비정치적인 방식으로 만드는 것은 그 자체로 또 다른 정치적 결과를 낳는다.
5.18 소재를 가장 많은 관객이 가장 이견이 적은 방식으로 볼 수 있도록 하려는 감독의 의도는 보는 이를 지속적으로 울리면서도 눈물 뒤에 허전함과 아쉬움이 짙게 남는 영화를 낳았다. 극 초반 30분간 시민들은 아무런 전조를 느끼지 못한 채 낭만적이고 따뜻한 나날을 누리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다 갑자기 계엄군이 곤봉을 휘두름으로써 비극이 터져 나오듯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시민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원초적으로 저항하다가 힘없이 스러져 가는 모습이 종종 ‘재난 영화’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찌된 까닭일까.
‘화려한 휴가’는 무거운 이야기를 코미디와 멜로로 희석시킴으로써 관객동원력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5.18을 소재로 삼았다고 해서 100억원을 들인 대작 영화가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당의정을 냉철하게 배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5월 광주에도 분명 웃음이 있었고 사랑 또한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 작품이 코미디와 멜로를 가미했다는 게 아니라, 코미디와 멜로를 관성적이고
평면적인 방식으로 짜넣었다는 것이다.
극 초반 박철민과 박원상이 주도하는 코미디는 배우들의 개인기 덕에 어느 정도 효과적이다. 민우에게 연애 비법을 알려주기에 앞서서 좀더 나은 안주를 시킬 것을 암시하며 “안주가 건방지다”라고 말하고, 뒤늦게 야유회에 온 사람들을 맞으며 “아따 잘 오셨소. 둘만 딸랑 오신 것이 영 겸손했었는디”라고 너스레를 떠는 박철민의 대사들은 상당히 유쾌하다. 그러나 중반 이후 계엄군의 난폭한 진압이 본격화하면서, 극 초반을 주도하던 코미디는 리듬을 잃고 허둥대거나 엉뚱한 곳에 끼어들어 극의 밀도를 떨어뜨린다. 그리고 민우와 신애 사이의 관습적인 허구의 멜로는 거대한 실화의 참극 속에서 제 위치를 정립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해진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순수의 결정체와 악의 화신으로 손쉽게 양분되어 있다. 극에서 주어진 임무에 따라 공식적으로 찍어낸 듯 제조한 캐릭터들 때문에 배우들의 연기도 그리 인상적이지 않다. 고등학교 교실에서 친구를 잃은 급우들이 하나같이 팔꿈치를 책상에 올린 채 얼굴을 감싸 쥐고 울고 있는 장면처럼, 조-단역들의 동선도 종종 기계적이다. 광주의 명예를 기리는 이 영화가 코믹한 두 조연 배우에게만 사투리를 쓰도록 한 것도 동의하기 어려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화려한 휴가’는 서서히 잊혀지고 있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영화로 되살려내 역사의 망각에 저항한다는 점에서 분명 미덕을 지녔다. 그런데, 혹시 그 이상일 수는 없었을까. 100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이 대작이 나왔기에 이후 당분간은 5.18 영화가 만들어지기 어렵다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어렵게 이끌어낸 영화적 기회가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안이하게 소모되고 만 것은 아닐까. 모두가 옷깃을 여밀 수 밖에 없는 역사의 비극을 영화화했다는 이유만으로 이 작품에 흔쾌히 박수를 치기엔, 이미 흘러가버린 27년의 세월이 너무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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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개인적으로 몇마디 붙이자면....
위에 쓴 리뷰에서 조금은 언급했던 (물론 제가 쓴 글은 아니지만) 것 처럼...
5.18을 다룬 영화는 없었다. 그리고 소재가 한번 이용된다면...조만간 같은 소재로 영화가 만들어지기 어렵다고 할때...
이번 영화는 너무 경솔했던것 같다. 극장에서 나오면서 물론 가슴 뭉클한 것도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 상황이 코믹과 멜로에 너무 희석 되버렸다.
이것도 감독의 어정쩡한 표현력때문에 묻혀버릴 영화를 만든것같다.
이 영화가 다큐 영화로 제작되었다면 좋았을것 같다. 진지한 영화...누구도 다루지 못했던 영화...첫술에 배부를 순 없지만...아쉬움이 크다.
또..."이대근, 이댁은" 이 영화도 권해본다.
다시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