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 산행 & 여행정보


2008/11/07   옛 절터, 스러진 시간 속으로 마음산책 [2]
2008/07/31   금강산 빼닮은 ‘대한민국 명승지 1호’ [2]
2008/07/29   ‘님의 침묵’ 따라 詩가 흐르고…
2008/07/29   비로자나불의 사랑을 깨닫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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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절터, 스러진 시간 속으로 마음산책


[길따라 삶따라] 여주~원주~충주로 남한강변
 
천년 세월 빈 들에 나뒹구는 보석들 가을걷이
신라, 고려 거쳐 조선초까지 하루에 시간여행


빛바래고 시든 것들, 떨어져 바람에 날리고 쌓인다. 쌓이고 뒹구는 게 나뭇잎만은 아니다. 무너지고 쓰러져 뒹구는 것들이 가을 하늘 아래 허다하다. 빈 들에 버려져 굴러다니는 것들을 만나러 간다. 망한 옛 절터, 폐사지(廢寺址)들이다. 천년 세월을 잡풀 우거진 들판에 눕고 앉고 쓰러져 나뒹구는 보석들을 찾아 떠나는 시간여행이다.
 
'전 국토가 박물관'인 우리나라는 폐사지의 나라이기도 하다. 방방곡곡 3천여곳에 크고 작은 옛 절터가 흩어져 있다. 스러진 절터에 고인, 아득한 시간의 향기에 반한 이들은 이것을 '아름다운 폐허'라 부른다. 가을의 하루, 옛 절터를 찾는 일은 그래서 천년 세월 흥망성쇠의 허망함과 텅 빈 들판에 가득한 절절한 울림을 되새기며 위로받는 여정이 된다.
 
전 국토가 박물관, 아름다운 폐허
 
옛 절터가 보여주는 건 짓밟히고 깨지고 불타고 남은 것들, 버려져서 더욱 단단해진 것들이다. 단단해질 대로 단단해진 것들이, 다져질 대로 다져진 폐허 위에 널렸다. 놀라운 건 폐허 속에 살아남은 보석 같은 유적들이다. 집도 절도 없는 빈터에 국보·보물급 문화재들이 깔려 있다. 천년 세월을 견딘 석탑과 부처상, 비석들은 현란한 조각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섬세하고 또 투박하게 새긴 글씨들도 나그네의 눈을 거듭 새로 뜨게 한다. 폐사지는 불교 유적 이전에 이미 이 나라 역사·문화의 토양이다. 잡초에 묻힌 주춧돌, 발끝에 차이는 기왓조각 하나까지 모두 조상들의 손자취·발자취가 서렸다.
 
삼국시대 이래 우리 땅에 번창하던 절들은 화재나 자연쇠퇴로 사라진 곳이 적지 않지만, 수많은 사찰이 몽고 침입과 임진왜란을 거치며 소실된 것으로 전해진다. 복원된 절들도 다시 육이오 때 불탄 곳이 많다.
 
일부 중요 절터들에선 발굴 및 정비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나, 대부분은 방치돼 있는 상황이다. 옛 절터 중 문화재나 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되는 곳은 100여곳뿐이다. 나머지는 집터로, 논밭으로, 야산으로, 잡목숲으로 남아 있다. 일부 절터의 발굴·정비 작업은 예산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옛 절터들의 문화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보호·보존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시민단체인 문화복지연대는 3년 전부터 '1폐사지 1지킴이' 운동과 옛 절터 순례행사를 펼치고 있다. 절터를 찾아가 여는 '달오름 음악회'도 올해로 4회째 진행했다. 국회에선 폐사지 보존을 위한 법안 제정을 추진 중이다.
 
무너져내리고 바람에 쓸리기 쉬운 가을, 폐사지 여행길에 마음의 보석 하나씩 건져 오자. 폐사지의 보석도 아는 만큼 보이는 법. 잠깐이라도 공부하고 떠나면 훨씬 풍성한 시간여행을 즐길 수 있다.
 

5곳 180리 절터마다 고승들 발자취 뚜렷
 

 폐사지 기행의 대표적 코스로 꼽히는 곳이 여주~원주~충주로 이어지는 남한강변이다. 강변길을 따라가며 신라·고려를 거쳐 조선 초까지 번창하던 옛 절터 다섯 곳을 차례로 순례할 수 있다. 여주 고달사터, 원주 흥법사터·법천사터·거돈사터, 충주의 청룡사터를 차례로 만나게 된다. 절터마다 고승들의 발자취가 뚜렷하다. 도로상 총 거리는 약 73㎞. 수도권에서 갈 경우 일찍 출발하면 하루에 다섯 곳을 모두 둘러볼 수 있다.
 
원주 법천사터와 거돈사터엔 문화유산해설사가 수·목·금요일에 상주하며 방문객들을 맞는다.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머물며, 절터의 역사와 가치, 문화재에 얽힌 사연 등을 상세히 들려준다.
 
◇ 여주 고달사터(북내면 상교리);사방 30리 절터, 고려 제일 사찰
 

커다란 느티나무 그늘을 지나 들어선 널찍한 절터. 마사토를 깔고 기단석 틈을 조정하는 등 정비작업이 한창이다. 1998년 발굴을 시작해 6차례 주요 발굴작업을 끝내고, 올해 말까지 탐방로 조성 등 정비작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한다.
 
혜목산 자락 '사방 30리가 절터'라는 고달사는 신라 경덕왕 때(764년) 창건돼 고려시대 왕실의 비호를 받으며 크게 번창했던 절이다. 고려 초기 3대 선원 중 하나로, 당시엔 고달원·고달선원으로 불렸다. 명당을 찾아 떠돌던 '고달'이란 석공이 이곳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석조물들을 완성한 뒤 출가해 고승이 됐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폐사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먼저 절터의 오른쪽 길을 따라 오르면 산 밑으로 높이 2.5m의 원종대사 혜진탑(보물 7호)이 모습을 드러낸다. 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린 거북 등에 네 마리의 용이 탑을 떠받치고 있는 부도다. 원종대사는 고려 역대 왕들의 비호 아래 고달선원을 당시 제일의 사찰로 일군 고승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왼쪽 숲으로 뚫린 멋진 돌계단을 오르면 고달사 유적의 백미라는 국보 4호 고달사지 부도를 만난다. 고승 원감국사의 부도로 추정된다. 거북과 용·구름의 모습이 어우러진 웅장한 중대석과 사천왕상이 돌아가며 새겨진 몸돌의 조각이 섬세하고 화려하다. 지붕돌 밑에 돋을새김으로 조각된 비천상도 눈여겨볼 만하다. 얼굴과 상반신, 바람에 날리는 옷깃 등의 부드러운 곡선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고즈넉한 숲길을 내려와 절터 중앙 쪽으로 내려서면 비석을 세웠던 흔적이 보이는 목 잘린 거북상, 웅장한 모습의 거북상과 비석 머릿돌이 남아 있는 원종대사 혜진탑비(보물 6호), 법당터 한가운데 자리한 국내 최대 규모의 석불대좌(보물 8호·불상을 놓았던 대)를 차례로 만난다. 원종대사 혜진탑비의 몸체는 일제시대 낙뢰로 쓰러지면서 여덟 조각으로 깨진 것을 국립박물관으로 옮겼다고 한다. 법당터 앞쪽에 있던 쌍사자석등(보물 282호)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지고, 기울어진 지대석만 남아 있다.
 
◇ 원주 흥법사터(지정면 안창리);우람·강렬·화려한 조각 인상적
 

고달사터에서 나와 좌회전해 88번 지방도를 따라 22㎞를 달리면 원주 땅 3대 폐사지의 하나로 꼽히는 흥법사에 이른다.
 
통일신라 말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절로, 당나라 유학에서 돌아온 진공대사가 고려 태조의 왕사로 신임을 받으며 크게 번창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으로 본다. 민가와 인삼밭 앞 널찍한 축대 위에 비석 몸체가 없는 진공대사 부도탑비(보물 463호)와 수수한 멋을 간직한 삼층석탑(보물 464호)만이 남아 있다. 탑비를 세웠던 거북상과 지붕돌의 우람하고 강렬하고 화려한 조각이 인상적이다. 몸체가 깨진 부도비 일부와 진공대사 부도탑은 국립박물관에 보존돼 있다. 절터 대부분이 개인 소유로 아직 발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 원주 법천사터(부론면 법천리);진리가 샘처럼
 

흥법사에서 문막읍을 거쳐 49번 지방도를 타고 부론·귀래 쪽으로 22㎞쯤 가면 부론면 법천리, 진리가 샘처럼 솟는다는 뜻을 가진 법천사터가 나온다. 법천리 서원마을 전체가 옛 절터다. 발굴 작업이 중단된 상태이며, 곳곳에 푸른 비닐을 덮어 놓았다. 몸통이 빈 거대한 느티나무 그늘에 차를 두고 잠깐 산길을 오르면, 눈부신 조각으로 장식된 석물들이 한데 모여 있는 옛 부도각 터가 나타난다.
 
축대 위의 좁은 터에 세 채의 건물터가 있고, 그 앞에 국내 부도탑비 중 가장 아름답다는, 11세기의 고승 지광국사의 부도탑비가 서 있다. 지광국사 현묘탑비(국보 59호)다. 거대한 몸체의 거북상과 점판암 비석, 지붕돌 모두가 섬세하고 화려한 조각으로 치장돼 들여다볼수록 눈부시다.
 
구름무늬 위에 놓인 거북의 머리는 용의 모습인데, 특이하게도 수염을 조각해 놓았다. 수염이 머리 무게를 지탱하는 형태다. 등껍질엔 승통·왕사·국사 칭호를 받은 고승의 비석답게 임금 왕(王) 자를 줄지어 새겼다. 압권은 비석 몸체 양 옆면에 새겨진 용의 모습이다. 쌍룡이 여의주를 놓고 다투며 몸틀임을 하는 형상이 매우 아름답다. 비석 앞면 위쪽은 봉황무늬, 삼족오, 비천상, 해와 달의 형상들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비석의 일부는 세월의 무게로 깨지고 부서져 나가 고색창연한 맛을 더한다. 비 앞면엔 지광국사의 행적이, 뒷면엔 국사의 제자 1370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탑비 앞에 짝을 이뤄 세워졌던(1085년) 지광국사 현묘탑(국보  101호)은 국내 부도탑 중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오사카로 빼돌렸던 것을 반환받아 지금은 경복궁 경내에 보관하고 있다. 건물터 한쪽에 모아놓은 석탑 일부와 광배, 연꽃무늬 받침대 등 각양각색의 석물들은 화려했던 법천사의 옛 모습을 보여준다. 높이 3.9m의 법천사 당간지주는 마을 안쪽 창고 옆에 서 있다.
 
◇ 원주 거돈사터(부론면 정산리);석축 돌 품은 수령 1천 년 느티나무
 

발굴을 끝내고 잘 정비된 대표적인 옛 절터다. 법천사터에서 599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자작고개를 넘어가면 정산2리, 절터 들머리가 나온다. 법천사~거돈사 9㎞.
 
절터에 이르면 먼저 웅장한 석축과 수령 1천년을 헤아린다는 거대한 느티나무가 나그네를 맞는다. 느티나무의 뿌리가 석축의 커다란 돌을 품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석축 사이 돌계단을 오르면 보물 750호인 삼층석탑이 차츰 모습을 드러내고, 이어 광활한 절터가 펼쳐진다.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후기 탑으로, 널찍한 사각 축대 위에 흙을 쌓고 그 위에 탑을 세운 점이 특이하다. 높아진 하늘 아래 잠자리들의 탑돌이가 한창인데, 탑 앞에는 연꽃무늬가 선명히 새겨진 배례석이 묵묵히 놓여 있다. 탑 뒤쪽 법당터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세워진 투박한 화강암 불좌대에선 옛 절터를 감싸고 흘러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절터 오른쪽 끝에는 고려 광종의 총애를 받은 고승 원공국사 부도비(원공국사 승묘탑비·보물 78호)가 서 있다. 거북 등짝에 법천사 지광국사 부도탑비와는 달리 만(卍)자를 연이어 새겼다. 탑비엔 최충이 짓고 김거웅이 썼다는 구양순체의 선명한 글씨가 아름답다. 절터 위쪽에 서 있던 원공국사 승묘탑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서울로 가져간 것을 회수해 1948년 경복궁으로 옮겼다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 보존하고 있다. 탑이 있던 자리엔 모조품을 세웠다. 절터 왼쪽에 모아놓은 주춧돌·맷돌 등 발굴된 석물들도 볼만하다. 개울 건너 옛 정산분교 운동장 한쪽엔 길이 9.6m에 이르는 당간지주 한 짝이 쓰러진 채 잡초에 묻혀 있다.
 
◇ 충주 청룡사터(소태면 오량마을);권문세가, 첩 무덤 쓰려 불 질러
 

거돈사터를 나와 좌회전해 599번 지방도를 타고 내려가다 단강분교 지나 삼거리에서 목계·능암 쪽으로 우회전해 남한강변길을 한동안 달리면 복탄삼거리에 이른다. 여기서 소태로로 좌회전해 4.8㎞를 가면 오량동 청룡사터가 나온다.
 
화장실이 딸린 주차장에 차를 대면 산기슭으로 난 울창한 숲길이 기다린다. 방치된 폐사지의 분위기가 제대로 다가오는, 어둠침침하고 적막한 산길이다. 위전비(조선 숙종 때 불자들의 기증 내용을 기록한 비석)를 지나면 항아리 모양의 부도인 적운당 부도가 있다. 옆길로 잠시 발걸음을 옮기면 여말 선초의 고승 보각국사 정혜원융탑비(보물 658호)와 사자석등(보물 656호), 보각국사 부도인 정혜원융탑(국보 197호)이 모습을 드러낸다. 모두 1394년 태조 이성계의 명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부도의 팔각 몸돌엔 사천왕상을, 모서리 기둥 형상엔 용을 조각했다. 뒤쪽의 탑비는 비 몸체만 세워진 모습이다. 거북상도, 지붕돌도 없는 담박한 모습이다.
 
고려 말 작은 암자에서 출발해 조선 초 대찰로 성장했다는 청룡사의 폐사 이유가 놀랍다. 구한말 판서를 지낸 민씨가 명당으로 알려진 청룡사 자리에 첩의 무덤을 쓰려고 절의 중에게 사주해 불을 질러 폐사시켰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여주 원주 충주/글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 절터 용어 설명
 
▷ 부도·부도탑 부도는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신 자그만 석조물이다. 법당 앞에 자리잡는 석탑과 달리 절 들머리나 뒤쪽 산자락에 주로 세워져 있다. 신라 말~고려 때까지는 팔각형 몸체에 지붕돌을 얹고 화려한 조각을 곁들인 부도가 많았으나, 조선시대 이후 종형·항아리형 부도가 일반화됐다.
 
▷ 부도탑비 부도의 주인공의 공적을 기려 부도 옆에 함께 세운 비석이다. 고승과 그 제자들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 당간지주 사찰에서 행사가 있을 때 절 앞에 세우는, 일종의 깃대인 당간을 지탱하기 위해 설치한 석조물이다. 두 개의 돌기둥을 마주 보게 세우고 그 사이에 나무나 철재로 만든 당간을 세웠다.

◈ 여행쪽지
 
▷ 가는 길
남한강변 옛 절터 여행은 수도권에서 갈 때 여주 고달사터부터, 충주권에서는 목계나루 부근 청룡사터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수도권에선 영동고속도로의 여주나들목을 나가 37번 국도 따라 여주로 간 뒤 버스터미널 네거리에서 여주대교 쪽으로 우회전, 여주대교 건너자마자 북내 쪽으로 우회전한다. 345번 지방도 만나 좌회전해 주암리 쪽으로 직진해 올라간다. 외룡리 지나 내룡리에 왼쪽으로 빠지는 고달사지 가는 샛길이 나온다. 길 따라 가면 88번 지방도를 만나 다시 좌회전하면 곧 오른쪽으로 고달사지 팻말이 나온다.
 
▷ 먹을거리
여주 이포대교 앞 천서리에 막국수촌이 형성돼 있다. 많이 알려지기로는 강계봉진막국수(031-882-8300), 홍원막국수(031-883-1500), 천서리막국수집 등이다. 5년 전 생긴 시원막국수(031-883-3824)는 조미료를 쓰지 않고, 100% 메밀을 쓰며, 그것도 햇메밀만을 고집하는 집이다. 깔끔한 메밀 맛을 내는 집이다. 원주 문막읍에선 대감집(033-734-5637)의 보리밥과 일승 김치찌개(033-734-5420)의 김치찌개가 유명하다. 충주 가금면 장천리 옛 목계교 건너의 목계솔밭나루터가든(043-855-6493)이나 강변횟집의 참마자조림·잡고기매운탕 등도 맛볼 만하다.
 
▷ 연락처
‘1폐사지 1지킴이’ 관련 문의 문화복지연대(www.culfare.or.kr ) (02)942-0144~5. 원주시 부론면사무소(법천사터 거돈사터 문화유산해설사 신청) (033)737-5627.
 
◈ 전국의 가볼 만한 옛 절터들



▷ 양주 회암사터
고려 충숙왕 때 지공화상이 창건했다는 절로 조선왕조의 원찰, 국찰로 불린 대사찰이었다. 지공화상·나옹선사·무학대사 등 대선사들의 자취가 어린 곳이다. 전성기엔 전각이 262칸에, 높이 15척 되는 불상만 7구가 있었고, 승려수는 250여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나옹의 행적을 적은 회암사지 선각왕사비(보물 제387호), 지공·나옹 및 무학 부도(보물 388호), 쌍사자석등(보물 389호) 등 숱한 문화재가 남아 있다. 발굴 작업을 마치고 최근 마무리 정비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 충주 미륵리 절터
월악산 하늘재 아래 있는 고려 때 대사찰 터다. 미륵대원지로도 불린다. 창건·폐사 시기 등의 확실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석굴암을 모방한 석굴 안에 세운 높이 10m가 넘는 미륵대불 입상(보물 96호)과 미륵리 오층석탑(보물 95호) 등이 남아 있다. 자연석을 통째로 다듬어 만든 대형 거북상도 볼 만하다.
 
▷ 부여 정림사터
백제탑으로 불리는 높이 8.3m의 대형탑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9호)으로 이름난 백제시대 절터. 정림사지탑은 익산 미륵사지탑과 함께 백제 최고 석탑으로 평가된다. 정림사지 석불좌상(보물 제108호) 등이 남아 있다. 발굴을 마치고 깔끔하게 정비돼 있다.
 
▷ 익산 미륵사터
백제 무왕 때 창건된 백제를 대표하는 대사찰이었다. 총 10만평 터에 조성에만 35년이 걸렸다고 한다. 국보 11호 미륵사지 석탑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최대규모의 석탑으로 불린다. 창건 때는 9층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나 지금은 6층만 남아 있다. 현재 석탑 해체·보수작업이 진행 중이다.
 
▷ 양양 선림원터
미천골 휴양림 들머리에 있는 절터. 통일신라 애장왕 때 창건돼 9세기 후반에 폐사된 것으로 추측된다. 발굴된 유물이 9세기 후반 이전의 것이어서 당시 산사태 등으로 일시에 매몰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층석탑·석등, 흥각선사 부도비와 부도 등 보물 4점이 남아 있다.
 
▷ 합천 영암사터
황매산 자락에 자리 잡은 신라 말기에 창건된 절터다. 유홍준이 '답사여행의 비장처'로 꼽은 폐사지. 조선 초기에 폐사된 것으로 알려진 이 절터엔 쌍사자 석등(보물 353호), 삼층석탑(보물 480호), 2개의 암수 거북상(보물 489호) 등이 남아 있다.
 
▷ 남원 만복사터
덕유산 자락의, 고려 때(11세기) 창건된 사찰. 김시습의 한문소설 <금오신화>에 나오는 <만복사 저포기>의 무대가 된 절이다. 스님이 수백명에 이르렀다고 하나 정유재란 때 왜구에 의해 불탔다. 은근한 미소로 잘 알려진 석인상을 비롯해, 보물인 석불입상·오층석탑·석대좌·당간지주 등 문화재가 있다.

 
◈ 떠나기 읽어볼 만한 폐사지 관련 책들
 
▷ 잊혀진 가람 탐험/ 장지현 지음/ 여시아문 펴냄
우리나라 옛 절터를 순례하며 보호·보존운동을 펴 온 저자가 대표적인 절터 38곳을 탐방하고 쓴 폐사지 기행 안내서다. 주요 문화재들의 사진과 약도를 덧붙였다. 절에 얽힌 내력과 문화재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돋보인다. 
 
▷ 절터, 그 아름다운 만행/ 이지누 지음/ 호미 펴냄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인 저자가 직접 발품을 팔아 둘러본 강원도·경상도 지역 옛 절터 25곳을 담았다. 직접 찍은 사진들과 글솜씨가 돋보인다. 불교신문에 연재했던 칼럼을 모았다.
 
▷ 옛 절터/ 윤덕향 지음/ 대원사 펴냄
빛깔 있는 책들의 시리즈로 1989년에 처음 나온 책. 옛 절터 사진들과 설명, 시대별 절의 특징과 가람 배치 방식을 곁들였다. 부록으로 주요 절터 일람을 실었다. 
 
이 밖에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돌베개에서 펴낸 <답사여행의 길잡이> 등에서도 옛 절터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글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출처: 네이버 뉴스



by 표지 | 2008/11/07 12:18 | 산행 & 여행정보 | 트랙백 | 덧글(2)
금강산 빼닮은 ‘대한민국 명승지 1호’


[길따라 삶따라] 오대산 소금강 계곡

13㎞ 물길 숲길 걸음걸음 폭포에 더위 ‘풍덩’
산 너머 바다가 발밑…피서 ‘종합 선물 세트

◈ 여행 포인트

금강산 골짜기 경치에 버금간다 해서 소금강이다. 거대한 암반과 폭포가 이어지는 시원한 물길과 울창한 숲길을 함께 즐기는 골짜기다. 마의태자, 율곡 이이와 미수 허목의 자취가 서린 곳이기도 하다. 거대한 바위마다 새겨진 크고 작은 글씨들이 다 선인들이 노닐던 흔적들이다. 민박이나 야영을 하며 차가운 계곡물에 발 담그며 쉬기 좋다. 국립공원 지역이지만, 하류 쪽은 물놀이를 허용한다. 구룡연까지의 물길·숲길 트레킹은 더위를 피해 이른 아침이나 오후에 나서는 게 좋다. 왕복 2~3시간 거리다. 바다도 가깝다. 강릉 연곡해수욕장과 주문진해수욕장이 30여 분 거리다.

이 골짜기에서 피서를 즐기려면 8월 중순 이후가 좋다. 한 민박집 주인의 말씀. "7월 말 8월 초엔 말도 못합니다. 민박집도 꽉 차고, 계곡도 꽉 찹니다. 8월 중순부터는 인파가 급격히 줄어들지요."


작은 금강산 계곡이라 일컫기에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골짜기다. 구르다 멈춘 바위들은 다 집채만 하고 널찍한 암반을 후벼파며 굽이치는 물줄기는 맑고 거침없다. 크고 작은 폭포들이 즐비한데, 물살에 파이고 물 고인 웅덩이는 깊어서 검은빛이다. 이 경치를 보러 오르는 울창한 숲길은 거닐기에 적당하고, 물가의 길과 다리는 잘 정비돼 있다. 1970년 정부는 이곳을 대한민국 명승 1호로 지정했다.

야영장 앞부터 계곡…올라갈수록 폭포와 깊은 소 즐비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의 소금강 계곡은 오대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오대산 국립공원은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과 강릉시 연곡면, 홍천군 내면에 걸쳐 있다. 비로봉(1563m)·호령봉(1561m)·상왕봉(1491m)·두로봉(1421m) 등 오대산 줄기와 동대산(1433m)·황병산(1407m)·노인봉(1338m) 등의 고봉들이 솟았다.

소금강 계곡의 물줄기는 노인봉 동쪽 밑에서 발원해 흘러내리다가 연곡천과 합류해 동해로 빠져나간다. 노인봉이란 흰 산봉우리가 백발노인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물줄기의 멋진 경치는 6번 국도에서 소금강으로 드는 초입부터 드러나지만, 본격적인 바위계곡은 식당과 민박집이 즐비한 삼산2리 내동마을 주변에서부터 시작된다. 야영장 앞에서부터 암반을 휘돌아 흐르는 물길이 인상적인데, 상류로 오를수록 계곡은 거대한 바위들과 폭포와 깊은 소들이 줄을 잇는다.

멋진 폭포와 소, 암반 들엔 무릉계, 십자소, 연화담, 식당암, 구룡폭포, 만물상, 선녀탕, 백운대 등 각각 내력과 전설이 깃든 이름들이 붙어 있다. 구룡폭포, 만물상, 선녀탕 등 일부는 금강산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골짜기 마을 이름은 본디 청학동이었다. 노인봉도 청학산이었다. 400여 년 전 율곡이 이곳에 들렀다가 소금강이란 이름을 붙였다. 율곡이 청학동을 탐방하고 쓴 '청학산기'에 그런 내용이 전한다고 한다. 골짜기마다 율곡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신라 마의태자 흔적 엿볼 수 있는 식당암과 피골

금강사 지나 잠시 오르면 나타나는 식당암은 물가에 깎은 듯이 반듯하게 앉은 거대한 암반이다. 식당암이란 이름은 마의태자가 군사를 훈련시키면서 이곳에서 밥을 먹었다는 데서 유래했다. 이 골짜기를 탐방하던 율곡 선생도 여기서 밥을 지어먹었다고 한다.

흔히 널찍한 바위의 규모를 설명할 때 '몇 명이 앉을 수 있느냐'로 크기를 가늠하곤 한다. 오대산국립공원 소금강 분소의 김동섭(29)씨는 "식당암은 장정 100명이 동시에 앉아 밥을 먹을 수 있는 바위"라고 말했다. 만물상 상류 쪽에는 "장정 50명이 동시에 앉아 쉴 수 있는" 백운대 바위가 있다. 만물상 절벽엔 장정 대여섯명이 동시에 통과할 만큼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는데, 해와 달이 넘나들던 구멍이라 하여 일월암으로 불린다. 소금강 주차장 옆엔 나무 굵기가 장정 두 명이 마주 안고 손을 잡을 만한 커다란 소나무가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령 450년의 금강송으로 마을 당산나무다.

소금강 골짜기의 진경은 본류 중간의 왼쪽 지류인 구룡폭포 줄기다. 옛날 이 골짜기를 피골이라 했는데, 신라말 마의태자의 군사들이 고려 군대와 싸울 때 크게 패하면서 흘린 피가 내를 이뤘다 해서 나온 이름이다.

이 골짜기로 아홉개의 볼 만한 폭포가 상류 쪽으로 이어진다. 맨 위쪽에 암반을 따라 깊은 소가 줄지어 있는 상팔담이 있다. 물살에 파인 깊은 소들의 빛깔은 모두 검은색이다. 구룡연에서 아홉마리의 용이 나와 폭포를 하나씩 차지했다고 한다. 상팔담 위쪽 능선엔 마의태자가 쌓았다는 아미산성 흔적이 남아 있다.

선인들이 바위에 새긴 글씨들 볼 만 

골짜기 바위마다 선인들이 새긴 크고 작은 글씨들이 남아 있다. 구룡연 옆 바위자락엔 조선 중기 삼척 부사를 지낸 성리학자 미수 허목이 쓴 독특한 전서체의 '구룡연(九龍淵)'이란 글씨가 있다. 6번 국도 옆 소금강 들머리 다리 옆 바위에 '선녀가 도취될 정도로 아름답다'는 뜻의 취선암(醉仙岩), 그 밑 바위에는 지기대(知己臺)란 글씨가 있다.

커다란 바위와 폭포가 어우러진 무릉계 반석엔 '무릉계'란 글씨가 있다 하나 찾을 수 없다. 금강사 앞 이능암이라 불리는 거대한 둥근 바위에 쓰인 '소금강'이란 글씨가 율곡의 것이라는 설이 있다. 그러나 신빙성이 없다는 게 향토사학자들의 견해다. 이능계원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삼산2리 산자락엔 청학사 터가 있다. 규모가 큰 절이었으나 일제 때 불탔다고 알려진다. 절터 들머리 길 오른쪽 산비탈 밭가에 다섯개의 크고 작은 부도들이 기울어지고 쓰러진 채 방치돼 있다.

소금강 오가는 길에 진고개 밑 송천약수터에 들러 톡 쏘는 물맛을 즐겨볼 만하다. 연곡천 상류 물줄기 옆에 있다.  



<여행 쪽지>

소금강 골짜기는 13㎞에 이른다. 봄·가을로는 오대산 진고개에서 출발해 노인봉을 거쳐 소금강 계곡으로 내려오는 15㎞짜리 산행을 하는 이들이 많다. 숲길과 계곡의 주요 경치를 감상하려면 소금강분소가 있는 삼산2리 내동마을에서 출발해 숲길·물길을 따라 구룡폭포나 만물상·백운대까지 4~5㎞를 왕복하면 충분하다. 약 3시간 소요.

내동마을에 배나무집(033-661-4464) 등 민박집과 '산채로 유명한 집'(033-661-4252) 등 산채전문 식당들이 20여곳 있다. 식당들은 민박집을 겸하는 곳이 많다. 각종 산나물들이 푸짐하게 반찬으로 나온다. 민박 성수기 5만원 안팎.

소금강 내동마을 물길 건너편에 야영장이 있다. 텐트는 지참해야 한다. 1일 야영장 사용료 소형텐트(3인 이하) 3500원, 중형(4~10인) 5500원, 대형(11인 이상) 7500원.

내동마을에서 나가 6번 국도를 타고 연곡면으로 가면 민물고기인 꾹저구를 얼큰하고 시원한 탕으로 끓여내는 연곡꾹저구탕(033-661-1494), 그 옆엔 막국수가 먹을 만한 동해막국수(033-662-2263)가 있다.

강릉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소금강 내동마을까지 왕복하는 버스가 아침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매시간 운행한다. 50분 소요.

승용차로는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진부나들목에서 나가 오대산 월정사 팻말 보고 좌회전, 월정삼거리에서 좌회전, 병안삼거리에서 우회전해 6번 국도 따라 직진해 진고개를 넘어 내려간다. 부연동 들머리 지나 내려가 삼산1리에 이르면 오른쪽에 소금강길 들머리가 나온다. 국립공원 주차료 승용차 5천원. 오대산국립공원사무소 소금강분소 (033)661-4161.

출처: 한겨레신문, http://foodntrip.hani.co.kr/board/view.html?board_id=fnt_trip1&uid=68

http://yongjjin.egloos.com/1295156 --> 소금강 트레킹 다녀온 후기 있습니다.





by 표지 | 2008/07/31 18:22 | 산행 & 여행정보 | 트랙백 | 덧글(2)
‘님의 침묵’ 따라 詩가 흐르고…


2008 만해축전 내달 11 ~ 14일 백담사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한국 불교계의 커다란 축제가 휴가철인 8월 잇따라 열린다. 강원 인제 설악산과 경남 합천 가야산 자락에서 각각 열리는 ‘2008 만해축전’과 천년고찰 해인사의 ‘비로자나 사랑의 축제’가 그것이다. 휴가철을 이용해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산수(山水)의 풍광과 함께 의미있는 축제행사를 만나볼 만하다.

시인이자 승려, 민족운동가였던 만해 한용운(1879~1944·그림)의 사상과 문학을 기리는 ‘2008 만해축전’은 올해로 10주년을 맞아 다음달 11~14일 강원 인제군의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열린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총재 이지관 조계종 총무원장)가 주최하는 올해 행사는 특히 축전 10주년을 비롯해 건국 60주년, 현대시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학술·문학행사로 예년보다 더 성대하게 치러진다. 만해축전은 불교와 문학이 만나는 격조높은 축전으로 자리잡았다.

올해 행사 중 꼽을 수 있는 것은 만해학술원 주관으로 개최되는 ‘만해축전 10년 기념 국제학술회의’(11~14일)다. 학술대회는 ▲현대시 100년의 반성과 전망 ▲현대시의 세계화 문제와 번역 ▲현대시의 외국어 번역 현황과 문제점 ▲만해사상과 동아시아 근대담론 비교 연구 등 네 가지 세부주제를 갖고 독일, 프랑스, 멕시코, 일본 등 각국 학자들의 발표와 토론이 진행된다. 이어령 전 문화관광부장관의 기조연설을 시작으로 김종길(고려대 명예교수), 안토니 타이즈(서강대 교수), 김윤식(서울대 교수), 서준섭(강원대 교수), 헨리 메스처닉(파리 8대학 교수) 등 세계 석학들이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전제 조건들을 폭넓게 제시한다.

대중적인 문학행사도 다채롭게 열린다. 현대시 100주년 기념 문학의 밤(12~13일)이 만해마을서 열려 고은, 황금찬, 김규동, 김초혜, 김남조, 신달자 등 원로시인들의 자작시 낭송과 축하공연이 펼쳐진다. 시인과 평론가들의 현대시 특강이 진행되는 만해 시인학교(11~13일), 대통령상이 주어지는 전국 고교생 백일장 대회(12일) 등도 열린다.

또 한국현대시문학 100년사 동영상 상영, 님의 침묵 서예대전, 시·서·화 소장전 등의 전시회도 열린다. 이밖에도 청소년 댄싱경연대회, 대동축구대회, 인제군 게이트볼 대회 등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 축제도 마련된다. 제12회 만해대상 시상식 및 입재식은 오는 12일 오후 5시 님의 침묵 광장서 열리며, 이에 앞서 11일 제6회 유심작품상 및 신인문학상, 시조백일장 시상식이 개최된다.

출처: 문화일보,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80728010323300080040


http://yongjjin.egloos.com/1773767 참고하세요~~^^*





by 표지 | 2008/07/29 11:48 | 산행 & 여행정보 | 트랙백 | 덧글(0)
비로자나불의 사랑을 깨닫고…


비로자나 사랑의 축제, 내달 2일 해인사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성공적인 지방축제로 자리잡은 해인사의 ‘제3회 비로자나 사랑의 축제’(8월2일 개막)는 올해 다양한 행사와 굵직한 전시회로 손님을 맞는다. 매년 칠월칠석을 전후해 열리는 이 축제는 해인사 비로전에 있는 국내 최고의 목조 불상인 쌍둥이 비로자나불에 신라 진성여왕과 각간 위홍의 사랑과 영생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다는 것에 착안해 그같은 이름이 붙었다. 이번 축제의 주제는 ‘빛으로, 사진으로, 사랑으로’다.

특히 이번 축제에선 1600년 역사의 쌍둥이 비로자나불이 카메라 앞에 딱 하루 동안 공개된다. 해인사는 ‘비로자나 사랑의 축제’가 개막되는 2일 하루에 한해 국내 최고(最古)의 쌍둥이 목조 비로자나불에 대한 촬영을 허용하고 사진 촬영 콘테스트 등 행사를 연다. 평소 사진 촬영은 참선이나 예불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금지돼 왔다.

이번 축제는 주제에 걸맞게 젊은이들 또는 젊은 연인들을 위한 다채로운 문화행사로 꾸며졌다. ‘숲속 음악회’에서는 힘찬 공연으로 유명한 ‘장군밴드’와 국악계의 미녀 삼총사 ‘다비’가 거문고 앙상블을 선보이며, 소리꾼 남상일의 ‘사랑의 토크’, 포탈라 솔리스트 앙상블, 동국대 국악예술단 등의 공연이 마련됐다. 사랑을 주제로 가족이나 연인끼리 찍은 사진을 심사해 시상하는 ‘내 사랑을 찍어요’ 콘테스트도 열린다. 스님들과 함께 사랑의 소원을 담은 연등, 컵 등을 만드는 전통문화체험과 전통 한지 배우기 등도 마련됐고, 주명덕, 김중만 등 국내 정상급 사진작가 9명의 작품전 ‘사랑만(卍)’ 사진 전시회도 열린다.

한편 해인사성보박물관은 다음달 2~31일 성보박물관내 전시실에서 비로자나불 복장유물을 주제로 한 전시회를 열어 2005년 쌍둥이불에서 나란히 발견된 복장유물 33건 38점을 공개한다.


출처: 문화일보,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80728010323300080080





by 표지 | 2008/07/29 11:46 | 산행 & 여행정보 | 트랙백 | 덧글(0)
강원도行 ‘여름 로드투어’로 딱!


강원도行 ‘여름 로드투어’로 딱!
 
42번국도 명소들

▲ 정선의 아우라지 부근 송천에서 만난 평화로운 풍경. 잡히는 것이래야 손가락 굵기의 피라미가 고작이지만, 이렇게 맑은 강가에 나와서 바위에 걸터앉아 낚싯대를 드리우면 마치 한폭의 동양화 속으로 들어간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 평창강변에서 만난 오리떼들. 국도에서 샛길로 접어들면 이런 풍경을 쉽게 만날 수 있다.

▲ 동강변의 진탄에서 여울을 따라 내려가는 카누를 만났다. 진탄이란 ‘긴 여울’을 뜻하는 이름이다.

▲ 문희마을 뒤편 칠족령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동강의 풍경. 굽이치는 물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 식당을 겸하는 정육점이 유독 많은 임계의 한우영농조합직판장 식당에서 내놓는 1등급 한우 등심.

▲ 326㎞를 달려온 42번 국도가 끝나는 동해시. 그 길의 끝에는 두타산이 있다. 100년 이상된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서있는 두타산 무릉계곡을 끼고 오르면 쌍폭포를 만난다. 완만한 산길은 볕이 들지 않아 한여름에도 선선하고, 계곡 물은 발만 담가도 추위가 느껴질 정도로 차다. 42번 국도를 따라가는 여정을 마무리하기에 딱 알맞은 곳이다. 


# 휴가철 강원도의 맛을 가장 짙게 느낄 수 있는길 …42번 국도.
매번 같은 길은 택하는 것만큼 지겨운 것이 또 있을까. ‘속도’로 위안받긴 하지만 늘 타고가는 고속도로는 지루하기 짝이 없다. 하기야 풍경에 눈 둘 여유가 없는 고속도로에서는 어떤 길이나 다 똑같다. 100㎞가 넘는 속도로 맹렬하게 달리면 경부고속도로나 서해안고속도로나 영동고속도로나 다 매한가지란 얘기다. 결국 고속도로란 길의 의미 중에서 ‘출발지와 목적지를 연결한다’는 것 외에는 없다. 길 위에 올라서 옆을 둘러볼, 뒤를 돌아볼 손톱만큼의 여유도 없다.

끝없이 정체가 계속될 때도 앞차의 미등만을 주시할 수밖에 없는 길이다.

그러나 국도는 다르다. 그 길에서는 속도를 늦출 수도 있고, 갓길에 차를 댈 수도 있다. 수많은 갈림길을 만나고, 그 길에서 샛길로 찾아들 수도 있다. 구불구불 곡선의 고개를 저속으로 넘기도 하고, 강물과 어깨를 끼고 달릴 수도 있다. 길가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삶은 또 얼마나 다양한가. 자전거로 하교하는 말끔한 교복의 학생이 있고, 공공근로를 하러 나온 아낙들의 피곤한 어깨도 있고, 당산나무 아래 걸터앉은 촌로의 지루한 하품도 있다. 모두 다 속도를 늦출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다.

바야흐로 휴가철의 한가운데 들어섰다. 이번 주부터는 고속도로들도 행락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룰 터다. 이글거리는 햇볕아래 끝없이 차량들이 늘어선 고속도로의 정체는 그야말로 지옥과 같다. 고속도로가 가진 단 하나의 미덕인 ‘속도’마저도 얻을 수 없다면, 미련없이 고속도로를 내려서는 편이 영리하다. “아무리 막혀도, 그나마 고속도로가 더 빠르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출근길도 아니고, 촌각을 다투는 계약이 걸린 것도 아니다. 번잡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쉬자는 ‘휴가’ 아닌가.

여름 휴가에 꼭 맞는 국도가 바로 42번 국도다. 알다시피 국도의 홀수번호는 남북을 종단하고 짝수번호는 동서를 횡단한다. 짝수인 42번 국도는 인천에서 출발해 경기도와 강원도의 동해를 잇는다. 서해에서 시작해 동해까지 이어지는 장장 326.4㎞의 길이다. 길은 명소란 명소는 죄다 훑는다. 휴가 목적지가 강원도라면 이 길을 택하자. 아니 이 길을 달리기 위해 강원도를 휴가지를 택하는 것도 좋겠다.

# 새말에서 시작해 안흥을 지나 평창까지…

42번 국도는 인천에서 출발해 수원과 이천, 여주, 원주를 잇지만, 적어도 새말까지는 ‘우회도로’ 이상은 아니다. 번잡스러운 시내를 관통해야 하는 탓에 이렇다 할 정취는 없다. 고속도로가 정체 중이라면 모를까, 새말까지는 42번 국도를 타야 할 이유가 별반 없다. 영동고속도로 새말나들목 부근에서부터 ‘진짜 42번 국도’가 시작된다. 새말나들목에서 고속도로에서 나와 안흥방면으로 우회전만 하면 가볍게 국도에 올라선다. 원두막을 지어놓고 삶은 옥수수를 파는 주민들이 하나 둘 눈에 띄기 시작한다.

새말을 지나면서 길은 서서히 고도를 높인다. 전재(540m)를 넘어가면 안흥이다. 낙엽송 울창한 내리막길에 안흥찐빵의 원조집인 ‘심순녀안흥찐빵’(033-342-4460)이 있다. 주인 심순녀(64)씨가 스물 네살부터 찐빵을 만들어왔다니 올해로 꼭 40년째다. 갓 쪄낸 찐빵은 쫄깃하게 씹힌다. 팥소도 달지 않아 깊고 구수한 맛이 느껴진다.

안흥을 지나 힘겹게 문재터널(800m)을 넘어서면 평창이다. 여기서부터는 강원도 산촌마을의 정취가 짙어진다. 고랭지 채소밭에서는 배추 수확이 한창이다. 옥수숫대는 키보다 더 높이 훌쩍 자라있고, 고추밭에는 청고추들이 주렁주렁 달렸다.

길은 곧 계촌천의 물줄기와 만난다. 래프팅으로 유명한 뇌운계곡이다. 콰르르 소용돌이치며 힘차게 여울이 흐른다. 어차피 느릿느릿 가는 길. 국도에서 빠져 뇌운계곡 안쪽으로 들어서면 다수리, 계장리, 후평리를 지난다. 비포장과 포장길이 반복되는 길은 길가의 집에 바짝 붙어 지난다. 차창으로 담벼락 안이 들여다보일 정도다. 내친 김에 원당리 쪽으로 더 들어서면 원당계곡이다. 외지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곳. 계곡 물은 맑디맑아 진청색으로 빛난다. 원당리 주민들은 계곡 상류에 물통을 묻고 이 물을 먹는단다. ‘먹는 물’이 계곡을 타고 흘러내려 계곡을 이루고 있으니, 그 물색이 얼마나 맑을까.다시 42번 국도로 찾아들면 국도변에 ‘평창송어양식장’(033-332-0505)이 있다. 1969년 국내에서 최초로 송어양식을 시작한 곳이라는데, 횟집을 겸하고 있다. 가지런히 썰어서 내놓는 선홍색 송어 살이 쫄깃하다. 콩고물에 묻혀서 새큼한 초장과 곁들여 먹는 맛도 좋고, 갖은 야채와 버무려서 비빔회로 만들어 먹어도 좋다. 더운 여름에도 온도가 13도를 넘지 않는다는 용천의 차가운 샘물을 이용해 송어를 길러내는 모습도 볼 수 있다.

# 동강 거슬러 오르면 조양강, 조양강에서 더 오르면 골지천.

국도변 저 아래로 굽이쳐 흐르는 평창강을 감상하며 미탄 쪽으로 달려 멧둔재 터널(510m)을 지나면 동강이 모습을 드러낸다. 국도변의 표지판은 래프팅으로 유명한 진탄나루와 동강변의 문희마을이 지척임을 알린다. 표지판의 화살표대로 우회전해 국도에서 빠져나온다. 국도에서 꺾어져 진탄나루까지는 7㎞, 그리고 문희마을까지는 11㎞다.

동강에서 래프팅이 처음 시작됐던 것은 육로로 닿지 않는 강변마을의 때묻지 않은 풍광 때문이었다. 길을 따라갈 수 없으니, 강에 보트를 띄워서라도 숨은 비경을 만끽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정선군에서 동강 일원에 잠수교 5개를 잇달아 놓았다.

대부분의 강변마을이 찻길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영월쪽 동강변의 가정마을과 절메마을, 음지뉘룬마을, 진탄마을 등 4곳의 마을은 배가 아니고서는 접근할 수 없는 곳으로 남아있다. 옛 동강의 풍광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이들 마을을 강건너에서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문희마을이다. 마을 앞의 동강가에는 오리들이 유유히 떠있고, 유일한 교통수단인 줄배가 묶여 있다. 강변에는 강변마을 주민들이 강물에 몸을 담그고 반두를 들고 물고기를 쫓거나 다슬기를 잡고 있다. 평화로운 여름강변의 모습이다.

시간여유가 있다면 문희마을 뒤쪽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백운산의 칠족령 전망대에 올라봐도 좋겠다. 전망대에 오르면 동강의 굽이치는 물줄기가 시원스레 한눈에 들어온다. 칠족령까지는 왕복 3시간이면 넉넉하다.

42번 국도는 다시 비행기재(503m)를 넘고 반점재(503m)를 넘어 정선에 가닿는다. 동강 상류를 따라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 가수리에서 천과 만나 동강을 이루기 전인 조양강이 발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더 거슬러 오르면 아우라지다. 아우라지는 송천과 골지천이 만나 조양강으로 흐르는 곳이다. 국도는 골지천을 따라 나 있지만, 잠시 샛길로 들어 송천을 따라 7㎞만 달리면 레일바이크로 유명한 구절리역이 나온다. 꼭 레일바이크를 타지 않더라도, 송천을 바싹 끼고 이어진 기차 선로의 풍경만으로도 낭만적이다.

# 거기서는 길을 잃어도 좋겠다… 임계 사거리

아우라지로 되돌아 나와 골지천을 따라가다 큰너그니재(720m)를 넘으면 임계다. 읍내에는 ‘임계사거리’가 있다. 북쪽으로 가면 경포대가 있는 강릉이고, 남쪽으로 가면 한여름에도 밤이면 오슬오슬 추위가 느껴지는 태백. 서쪽은 동강으로 알려진 정선이고, 동쪽은 망상해수욕장이 있는 동해시다. 사거리에서 어느 길로 가든 이 여름 휴가를 멋지게 보낼 수 있으니 이쯤에서 길을 잃어도 좋겠다. 어느 길로 향하든 아름다운 계곡이나 짙푸른 숲, 혹은 눈부신 백사장이 펼쳐지는 바다가 있으니….

임계에서는 구미정을 찾아가보자.

남도 땅에는 이름난 정자들이며 누각들이 즐비하지만, 강원도 땅에는 바닷가 쪽을 빼면 이렇다할 운치 있는 정자가 없다. 그 아쉬움을 단번에 날려버리는 것이 바로 구미정이다. 임계천으로 이름을 바꾼 골지천변의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곳에 세워진 구미정은 조선 숙종때 공조참의를 지낸 이자가 당파싸움에 환멸을 느껴 낙향한 뒤 세운 정자다. 정자는 근래에 다시 지은 것이라 옛맛은 느낄 수 없지만, 주변의 풍광만큼은 감탄사가 나올 만큼 빼어나다. 구미정이란 이름은 정자 주변에 아홉개의 절경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그 아홉가지 아름다움의 내력은 정자의 현판에 또렷이 새겨 있다.

첫번째는 어량(어량). 통발을 놓고 튀어오르는 물고기를 잡는 풍광이다. 두번째는 주변의 밭둑의 아름다움을 일컫는 전주(전주). 세번째는 넓고 편편한 암반을 뜻하는 반서(반서)다. 이렇게 차례차례 아홉가지 경치를 하나하나 맞춰본다.

임계에서는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이 한우다. 좁디좁은 동네에 정육점만 7곳이 넘는다. 정육점 주인 대부분이 한우를 직접 길러내는 목장주인들. 제가 길러낸 한우를 파는 것이다. 고지대에서 자란 한우의 맛이 좋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것. 게다가 직접 길러낸 소를 잡아 신선한 고기를 파니 맛이 좋지 않을 수 없다. 가격 또한 1등급 한우 등심이 500g에 2만5000원선이니 저렴한 편이다.

임계농협 앞의 한우식당(033)을 추천할 만하다.

# 백봉령 넘어서 푸른 동해를 만나다

임계에서 42번 국도의 마지막 고갯길인 갈고개(750m)와 백봉령(780m)을 넘는다.

대관령이나 한계령, 미시령 등 백두대간을 넘는 다른 고개들은 가파르고 힘겹지만, 백봉령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이미 갈고개를 넘으면서 고도를 높인 터라, 백봉령은 산을 부드럽게 넘어간다. 등산으로 치자면 마치 길게 이어진 능선을 걷는 듯한 느낌이다.

백봉령 정상에서 내리막길로 접어들자마자 거짓말처럼 저 멀리 푸른 동해가 눈에 들어온다. 변변한 전망대조차 없고, 산을 깎아낸 흉물스러운 채석장도 시야를 막지만, 그래도 고갯마루에서 내려다보는 바다 풍경은 감격적이다. 이제 300여㎞가 넘게 달려온 42번 국도도 종점이 머지않았다. 고개를 저쪽에서는 고도를 한껏 높여 놓았지만, 이쪽은 해발 0m까지 내려가는 길이라 내리막길이 길다. 길은 굽었지만, 한계령처럼 급하지 않다. 오르막이 그랬듯이 내리막 길조차도 유순한 편이다.

동해시로 내려서는 길에 옥계 쪽으로 빠지는 갈림길이 나온다. 이쯤에서 42번 국도를 버리고, 옥계를 지나 해안선을 따라 나있는 해안도로인 7번 국도를 타고 강릉이며 속초 쪽으로 다가갈 수 있다.

별다른 목적지를 정하지 못했다면 동해의 두타산 무릉계곡은 어떨까. 쌍폭포며 용추폭포까지 오르는 산길은 왕복 2시간이면 충분하다. 아이들도 다녀올 수 있을 정도로 완만한 데다 햇볕 한줌 들지 않을 정도로 숲이 짙어 더위를 느낄 수 없다. 계곡물은 한여름에도 5분이상 발을 담그고 있지 못할 만큼 차갑다. 맑은 물에 발을 담그면 더위쯤이야 저멀리 사라진다.

남쪽의 삼척이나 울진 쪽으로 가려면 동해시까지 다 내려가서 북평교차로까지 가서 우회전해 7번 국도로 올라서면 된다. 목적지를 어디로 삼았든 동해에서는 지척이다.

아름다운 해안도로를 들자면 첫손으로 꼽히는 7번 국도와 만나는 북평교차로까지가 42번 국도의 끝이다. 이로써 326㎞를 달려온 국도의 끝은 동해시 북평 교차로다. 애써 표지판을 살펴가며 42번 국도를 따라왔지만, 어찌 보면 국도에 붙인 도로번호는 편의로 매겨놓은 것일 뿐. 42번 국도가 끝났다고 해서 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길은 매양 그곳에서 여러 갈래로 이어져 있다.

하지만 굳이 42번 국도로 달려가는 여정을 추천하는 것은, 느리고도 아름다운 풍경 속을 달린다면, 좀 너그러워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서다. 진짜 휴식이란, 맹렬한 속도보다는 이렇듯 느리고 너그럽게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자료출처: 평창·정선·동해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80723010323030010020

http://yongjjin.egloos.com/1972339 여기 참고하세요...(6번국도와 42번국도 이용, 동해-->서울)





by 표지 | 2008/07/28 10:53 | 산행 & 여행정보 | 트랙백 | 덧글(3)
궁예의 恨이런가…‘山’이 되지못한‘峰’


포천·가평 국·망·봉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 민둥산에서 바라본 국망봉 능선. 멀리 왼쪽 봉우리가 국망봉이고 오른쪽이 견치봉이다. 민둥산의 우거진 잡초와 때 이른 잠자리 떼가 미륵사상을 펴지 못하고 왕건에 의해 패망한 궁예의 한을 되새기게 한다. 

▲ 국망봉 정상.

▲ 견치봉 정상.

▲ 도성고개 방면에서 바라본 민둥산 능선의 방화선.


포천시 이동면과 가평군 북면의 경계에 위치한 국망봉(國望峰·1168.1m)은 경기도 내에서 화악산(1468m) 명지산(1267m)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산이다. 또 강원도와 함경남도의 도계를 이루는 평강군의 추가령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내려오며 한강과 임진강의 분수령을 이루다가 그 합류지점에서 멈추는 한북정맥의 임진강 이남으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국망봉은 왜 산(山)이라고 하지 않고 봉(峰)이라 했을까. 보통 한 개 봉우리를 가리키는 ‘봉’은 아무개 산에 속해있기 마련이다. 예컨대 계룡산 천황봉이라 하며, 이 경우 가장 높은 천황봉을 계룡산이라고도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포천 내 한북정맥에서 가장 높은 국망봉이 포함된 산줄기와 계곡을 ‘국망산’ 또는 ‘○○산’이라 하진 않는다.

조선 정조 때 실학자 신경준의 ‘산경표’(최성우장본, 59쪽)의 ‘한북정맥’에 보면, 백운산(白雲山)과 운악산(雲岳山) 사이에 망국산(望國山)이란 이름이 별다른 설명 없이 끼어 있다. 그 사이의 산이라면 지금의 국망봉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적어도 조선 후기에는 지금의 국망봉이 망국산으로 불렸다는 이야기가 된다.

언제부터 이름이 바뀌었을까. 포천 시지(市誌) 등 그런 기록이 있는 자료는 찾을 수 없다. 추측컨대, ‘망국’이 불경스러운 의미의 ‘망국(亡國)’과 발음이 같아, 어느 때인가 이름을 바꾸면서 심급도 낮춰 ‘봉’으로 부른 것은 아닐까.

널리 알려진 전설대로, ‘국망(國望)’은 후고구려(태봉)의 왕 궁예의 전설이 어린 이름이다. 호족집단인 왕건 일파에 쫓긴 궁예가 이 봉우리에 올라 도읍인 철원을 회한에 젖어 바라보았다 해서 ‘국망’이라 지었다고도 하고, 궁예가 자신의 폭정을 말리던 부인 강씨를 현재 일동면 강씨봉(830.2m) 아래로 귀향 보낸 뒤 나중에 왕건에 패해 쫓기며 강씨를 찾았으나 이미 죽어, 그 부인을 그리워하며 올랐다 해서 ‘국망’이라 지었다고도 한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사료에 없는 전설일 뿐이지만, 포천에는 울음산(鳴聲山), 패주(敗走)골, 항서(降書)받골 등 궁예와 왕건에 얽힌 지명이 아주 많다. 왕건과 궁예가 포천지역을 둘러싸고 얼마나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했는가를 짐작할 순 있다.

사실 왕건은 토지와 무력을 갖춘 호족을 기반으로 했고, 그에 반해 궁예는 호족을 배제하고 기층민을 기반으로 했다는 것은 역사연구에서 드러나고 있다. 궁예의 미륵신앙이야말로 민중의 사상이 아닌가. 그렇다면 ‘난폭한 궁예’라는 등의 남아있는 승자의 기록들은 상당부분 신뢰도가 떨어진다. 그래서인지, 포천에 전해지는 민중들의 전설은 승자인 왕건보다 패자인 궁예에 대해 더욱 애뜻한 마음과 친근감을 담고 있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사통팔달로 전망이 좋아 수도 한양을 감싸고 있는 도봉~삼각산까지 눈에 들어온다 해서 ‘국망’이라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실 국망봉 하나를 놓고 보면, 1000m대 높이를 빼자면 아주 매력있다 하긴 어렵다. 골이 여러갈래 깊고 길게 이어진다든지, 기암괴석의 절경이 곳곳에 있는 산은 아닌 것이다. 한북정맥과 연계해 보았을 때 국망봉은 살아난다. 그 연계산행이 역시 백미다. 광덕고개에서 백운산(948.9m) ~ 신로봉(999m) ~ 국망봉 ~ 견치봉(개이빨봉·1110m) ~ 민둥산(민드기봉·1023m) ~ 도성고개(630m) ~ 강씨봉 ~ 청계산(849m)의 코스가 한북정맥 종주구간에 들어있다. 이 코스만 해도 대략 25㎞ 남짓 될 텐데, 이를 지리산 종주에 견주는 이들도 있다.

포천시에 문의해보니, 늦어도 내년까지 이 코스를 정비해서 수도권 등반객들에게 내놓을 예정이라고 한다. 물론 지금도 강원 화천 복주산에서 경기 파주 장명산까지 한북정맥을 보통 12구간으로 나누어 종주하는 등반객들이 있지만, 포천 내의 경우만해도 일부구간을 제외하곤 이정표나 등반로가 제대로 정비돼 있진 못하다. 포천시는 일차적으로 내년 상반기까지는 백운산 ~ 국망봉 코스를 정비할 예정이라고 하니 반갑지 않을 수 없다.

22일 찾았을 때는 이동면의 장암저수지를 들입목으로 했다. 가평 쪽 등산로도 있지만 교통이 불편해 많은 사람들이 장암저수지를 들머리로 한다. 서울 상봉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 정류장에서 하차했다. 여기서 들입목까지는 걸어서 20분 남짓. 기본요금 밖에 안나온다기에 택시를 탔는데, 만원권을 내니 5000원 밖에 거슬러주질 않는다.

이번엔 다시 무슨 휴양림이라며 들입목 입구를 막아놓고 2000원의 입산료를 받는다. 국망봉이 8분능선까지 사유지라서 입장료를 받는단다. 뒤에 포천시에 물어보니 이곳의 입장료 때문에 등반객들의 항의가 이어진다고 한다. 나중에 알았지만 휴양림 입구에 못미쳐서 등산안내판 옆에 입장료를 안내고 오르는 길이 있다.

여기서 오르는 길은 세 갈래인데, 생수공장 직전 등산안내판에서 갈림길로 국망봉과 견치봉 사이 1130고지로 오르는 코스와, 휴양림 입구로 북서릉을 지나 급경사로로 국망봉에 바로 닿는 코스, 장암저수지 방향으로 들어가 삼형제폭포가 있는 광산골로 해서 신노령이나 신노령 고개로 바로 오르는 코스가 그것이다.

이날은 북서릉으로 해서 국망봉을 거쳐 견치봉 방면으로 방향을 잡았다. 코스는 가파르고 그다지 볼거리는 없다. 국망봉에 오르니 아직 철이 아닌 듯한데 잠자리들이 떼지어 날아다닌다. 안개가 끼어 전망이 좋지는 않았지만 가평 방향으로 경기도 최고봉인 화악산부터 탁 터진 경관이 눈에 들어온다.

국망봉과 이어진 능선은 암반이 거의 없는 육산이다. 특히 겨울엔 눈이 많아 설화와 상고대가 장관이어서 찾는 이들이 많다. 몇년 전에 겨울에 조난사고로 4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사고가 있었다. 특히 겨울엔 빤히 올려다 보인다고 쉽게 보고 장비를 갖추지 않았다가 낭패를 당한다. 여름에도 능선 깊이 들어갈수록 탈출로가 간단치 않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날도 견치봉 방면 코스는 역시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 억센 수풀이 좌우에서 길을 막고 있었다. 아래에서 갈아입은 반바지를 다시 긴바지로 바꿔입어야 할 정도다. 견치봉을 지나 민둥산에 이르는 길은 거의 길인지 수풀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민둥산에서 도성고개에 이르는 길에는 군부대가 조성한 방화선이 있다. 인근에 포사격장이 있는데 훈련이 자주있진 않지만 화재발생에 대비해 도로 2차선 정도의 폭으로 수㎞ 능선의 나무를 베어놓았다. 나무가 빼곡히 이어지다 이같은 길을 만나니 전망도 좋고, 키 높이로 자란 풀과 그 속의 꽃들이 보기에 나쁘지 않다. 가을이면 더 장관을 이룰 것 같다. 다만 나무그늘이 없어 따가운 햇빛을 참으며 땀을 흘려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어떤 코스로 갈까

◆등산코스
▲장암저수지~국망봉~견치봉~민둥산~도성고개~구담사~군부대(총 6시간 이상)

◆가는 길
▲동서울터미널에서 이동, 사창리 방면 버스

자료출처: 문화일보,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8072501032030008002





by 표지 | 2008/07/28 10:30 | 산행 & 여행정보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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